내가 Wand 같은 것을 다시 만든다면 ImageMagick 바인딩은 재고하게 될 것 같다. 기능이 많은 것이 정말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고, 실제로 그 때문에 그런 결정을 했지만, 여러가지 난점이 존재한다.

  1. 기능이 많다고 해도 결국 바인딩 API에 노출이 안되면 없는 기능이나 다름 없다.

  2. ImageMagick은 처음에 라이브러리로 개발된 것이 아니라 주로 convert, identity 명령어 도구로 개발되었고 나중에 그 기능을 C API로 노출한 것이기 때문에 API 디자인이 썩 좋지 못하다.

  3. 개발이 여전히 활발하고 업데이트가 잦은 것(늦어도 보름에 한 번은 새 버전이 올라온다)은 분명 장점이나, 그만큼 환경마다 버전이 파편화되어있다는 뜻도 된다. 바인딩 입장에서는 이 때문에 어떤 기능을 추가하고 싶어도 그 기능이 처음 추가된 ImageMagick 버전이 아직 널리 퍼져있지 않으면 쉽게 추가하기 힘들다.

  4. 생각보다 잔 버그가 많다. ImageMagick이 물론 성숙한 편이긴 하지만, 결국 기능이 많은 소프트웨어는 버그도 그만큼 많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3번 상황과 함께 조화되면 바인딩에서 ImageMagick의 특정 버전대에 나타나는 버그를 우회하기 위한 코드가 하나둘 추가되게 된다. 이런 것들이 많아지면 Twisted가 각 운영체제의 네트워크 스택 버그를 우회하기 위한 버전별 마스킹을 하는 것처럼 해야할 판. (그 정도로 심하지는 않지만.)

  5. ImageMagick 자체도 의존성이 어마어마하다. 결코 쉽게 설치할 수 있을만한 라이브러리는 아니다. Debian에서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apt-get install libmagickwand-dev로 설치를 하려고 하면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ImageMagick은 이런 의존성을 선택적으로 해놨기 때문에 버전 파편화와 별개로 런타임에 링크 가능한 라이브러리 집합으로도 파편화가 되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Wand 그만둔다는 얘기는 아니고.

2 weeks ago
sumanpark70:

2006년 만든 미투데이를 통해서 공간의 제한을 뛰어넘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매 순간 접할 수 있었고,  2012년 만든 밴드를 통해서 그리웠던 친구들이 다시 모여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됐습니다.
미투데이와 밴드에 이어 2014년에 새로 서비스를 선보이기 위해, 2013년 4월에 새로운 회사를 시작합니다. 아직 아무 것도 그리지 않은 흰 도화지 같은 회사일 뿐입니다. 차근 차근 “더 좋은 세상”이 되는데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겠습니다.

작년 가을 무렵 직장을 구하지 않고 있다는 글을 올린 바 있는데, 그때 혹시나 해서 덧붙인 말이 하나 있습니다.


  망하든 뭔가 되든 상황이 달라지면 블로그에 업데이트하겠습니다.


상황이 달라졌으므로 업데이트합니다. 저는 만박 님의 새로운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크게 궁금해하실 분도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제게는 꽤 특별한 경험이라고 여겨져서 몇가지 감상을 덧붙일까 합니다.

제가 처음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2007년 여름입니다. 그때 미투데이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글을 잘 남기지 않지만 제 미투데이 페이지 맨 아래쪽을 보면 다음과 같이 적혀있습니다.


  홍민희 님은 2007년 7월 21일부터 613명과 3,444개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 무렵부터 야간개발팀이라는 개발팀을 만들어서 VLAAH라는 서비스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만박 님께 저희 이런 거 만들었어요 하며 보여드린 기억도 나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가 어른들을 보고 흉내낸다는 느낌이었죠. 2007년이면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해입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접한 첫 우상과도 같은 존재가 만박 님인 셈입니다. 미투데이가 너무 좋아서 여러 해가 지나도록 중독되어 있었고, API를 쓰기 위한 클라이언트 라이브러리도 만들고 그랬습니다.1

그때 다행히 얼굴도장도 찍었고 친한척을 자꾸 했기 때문에 만박 님을 비롯해, 당시 미투데이 팀 분들이 절 기억해주시게 됐습니다. 그래서 만박 님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시며 제게도 연락을 주어 소식을 알려주셨습니다.

사실 합류를 결정하는 데에는 몇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지금 제가 하고 있던 크로스팝이라는 프로젝트가 전혀 마무리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고 (저는 애초에 마무리를 할 생각이 없었고 계속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팀은 제가 만든 팀이기 때문에 제가 그만두자고 하면 먼저 부추긴 쪽이 포기하는 모양새라 팀원들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요, 무엇보다 아직도 미련이 남아있어서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안될 것 같다고 답을 드렸는데, 만박 님이 메일을 보내주셔서 마음을 돌려서 결정하게 됐습니다. 사후에 일어난 합리화 같지만 생각해보니 크로스팝 팀에서 풀타임으로 하고 있는 사람이 저 혼자밖에 없었고, 그 혼자인 저마저도 100% 프로젝트에만 매달려서 진행하는 것이 아니었고 좀 늘어진 상태로 하고 있던 것이 사실입니다. 어차피 이걸 사이드 프로젝트로 돌려서 취미처럼 한다고 해도 기존에 하던 것과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는 슬픈 결론이… 무엇보다 통장 잔고가 바닥을 향해 가고 있고 차라리 나중에 팀원들한테 제대로 월급 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서 집중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네, 다 변명입니다.

그래서 소식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홍민희는 올해 봄부터 예전부터 우상이었던 만박 님과 함께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하고 있던 취미 같던 크로스팝 프로젝트는 정말 사이드 프로젝트처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해주세요.



이 문단에서 링크할 수 있는 것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 정말 아쉽습니다. ↩

sumanpark70:

2006년 만든 미투데이를 통해서 공간의 제한을 뛰어넘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매 순간 접할 수 있었고,  2012년 만든 밴드를 통해서 그리웠던 친구들이 다시 모여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됐습니다.

미투데이와 밴드에 이어 2014년에 새로 서비스를 선보이기 위해, 2013년 4월에 새로운 회사를 시작합니다. 아직 아무 것도 그리지 않은 흰 도화지 같은 회사일 뿐입니다. 차근 차근 “더 좋은 세상”이 되는데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겠습니다.

작년 가을 무렵 직장을 구하지 않고 있다는 글을 올린 바 있는데, 그때 혹시나 해서 덧붙인 말이 하나 있습니다.

망하든 뭔가 되든 상황이 달라지면 블로그에 업데이트하겠습니다.

상황이 달라졌으므로 업데이트합니다. 저는 만박 님의 새로운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크게 궁금해하실 분도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제게는 꽤 특별한 경험이라고 여겨져서 몇가지 감상을 덧붙일까 합니다.

제가 처음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2007년 여름입니다. 그때 미투데이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글을 잘 남기지 않지만 제 미투데이 페이지 맨 아래쪽을 보면 다음과 같이 적혀있습니다.

홍민희 님은 2007년 7월 21일부터 613명과 3,444개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 무렵부터 야간개발팀이라는 개발팀을 만들어서 VLAAH라는 서비스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만박 님께 저희 이런 거 만들었어요 하며 보여드린 기억도 나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가 어른들을 보고 흉내낸다는 느낌이었죠. 2007년이면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해입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접한 첫 우상과도 같은 존재가 만박 님인 셈입니다. 미투데이가 너무 좋아서 여러 해가 지나도록 중독되어 있었고, API를 쓰기 위한 클라이언트 라이브러리도 만들고 그랬습니다.1

그때 다행히 얼굴도장도 찍었고 친한척을 자꾸 했기 때문에 만박 님을 비롯해, 당시 미투데이 팀 분들이 절 기억해주시게 됐습니다. 그래서 만박 님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시며 제게도 연락을 주어 소식을 알려주셨습니다.

사실 합류를 결정하는 데에는 몇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지금 제가 하고 있던 크로스팝이라는 프로젝트가 전혀 마무리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고 (저는 애초에 마무리를 할 생각이 없었고 계속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팀은 제가 만든 팀이기 때문에 제가 그만두자고 하면 먼저 부추긴 쪽이 포기하는 모양새라 팀원들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요, 무엇보다 아직도 미련이 남아있어서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안될 것 같다고 답을 드렸는데, 만박 님이 메일을 보내주셔서 마음을 돌려서 결정하게 됐습니다. 사후에 일어난 합리화 같지만 생각해보니 크로스팝 팀에서 풀타임으로 하고 있는 사람이 저 혼자밖에 없었고, 그 혼자인 저마저도 100% 프로젝트에만 매달려서 진행하는 것이 아니었고 좀 늘어진 상태로 하고 있던 것이 사실입니다. 어차피 이걸 사이드 프로젝트로 돌려서 취미처럼 한다고 해도 기존에 하던 것과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는 슬픈 결론이… 무엇보다 통장 잔고가 바닥을 향해 가고 있고 차라리 나중에 팀원들한테 제대로 월급 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서 집중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네, 다 변명입니다.

그래서 소식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홍민희는 올해 봄부터 예전부터 우상이었던 만박 님과 함께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하고 있던 취미 같던 크로스팝 프로젝트는 정말 사이드 프로젝트처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해주세요.


  1. 이 문단에서 링크할 수 있는 것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 정말 아쉽습니다. 

This was posted 3 weeks ago. It has 65 notes and a high-res version.
OAuth 1 v. OAuth 2

지난해 Daniel Greenfeld가 Python OAuth 구현체들의 유감스러운 상태에 대해 글을 쓰고난 뒤, 이 문제가 중요하다고 여긴 Idan Gazit는 OAuth를 철저히 표준에 의거하여 “제대로” 구현하는 oauthlib 라이브러리를 만들었다. 이 라이브러리는 앞서 링크한 글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존 Python 커뮤니티에 혼란을 주었던 각종 OAuth 1 및 OAuth 2 라이브러리로부터 승리해야 했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의 기능을 총망라하고 있다. OAuth 1 및 OAuth 2 구현을 모두 제공하고 있을 뿐 아니라, 클라이언트와 프로바이더 구현 모두 제공한다. 따라서 2013년 4월 현재 Python에서 OAuth를 쓴다고 하면 OAuth 1을 쓰든 OAuth 2를 쓰든 간에 oauthlib을 선택하는 것이 정답이다.

이 oauthlib의 문서 앞쪽에는 어떤 인증 수단을 선택해야 할지에 대한 친절한 가이드라인을 별도 장을 할애해서 다루고 있는데 oauthlib 자체와 독립적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Python을 쓰고 있지 않더라도 인증 수단이 필요한 모든 클라이언트/서버 프로그래머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링크한다. 분량도 간결하고 내용도 매우 훌륭하다. 추천!

덧. oauthlib은 이름도 그렇고 어쩐지 Python 표준 라이브러리에 포함되는 것을 염두한 것 같기도 하다.

This was posted 1 month ago. It has 12 notes.

Authorization

만일 누가 내가 로그인해둔 랩탑을 훔친다면, 그 사람은 내 이메일도 읽을 수 있고, 돈을 훔칠 수도, 내 친구들한테 나인척 속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권한 없이 (디바이스) 드라이버를 설치하지는 못할 것이다.

위 xkcd 만화는 현대 운영체제의 권한 체계가 실생활의 보안에는 별로 쓸모가 없다는 점을 풍자한다고 여겨지는데, 현대의 운영체제가 웹 브라우저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저러한 것들은 결국 웹 브라우저와 웹 표준이 해결해야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1 month ago

과학은 엘리트주의인가

(이 글은 실험으로부터 분리된 이론은 과학이 될 수 없는가에서 이어지는 글이다.)

이덕하가 쓰는 진화심리학 글들이 대체로 오류가 많은 편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 듯하다. 이에 대해서는 이덕하 역시 여러 글들에 걸쳐 시인하고 있다.

가령 ‘이덕하씨에 대한 응답’에 대한 응답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5년 이상 된 글에서 제가 수 많은 오류를 범했다는 점은 저도 기꺼이 인정합니다. 제가 봐도 쪽 팔린 글이 많습니다.

실은 이덕하는 이전에도 진화심리학 교수로부터도 “잘못된 정보가 섞여있으므로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다”는 평가를 받은 바가 있다. 이덕하는 이에 대한 반응에서도 자신의 글에 잘못된 정보가 많다는 점을 인정한다.

전중환 교수의 말대로 저는 진화 심리학을 혼자 배웠습니다. 그리고 제 글에는 잘못된 정보와 바른 정보가 뒤섞여 있습니다. 사실 학자도 인간이기 때문에 모든 학자의 글에는 잘못된 정보가 섞여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전중환 교수는 이덕하도 인간이기 때문에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잘못된 정보가 너무 많이 섞여서 혼란을 일으킨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이해하기 쉬운 부정확한 정보는 득보다 실이 클까

그렇다면 이덕하는 자신이 진화심리학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섞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진화심리학 입문서를 쓰겠다는 결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덕하는 직접적으로 그러한 결심을 하게 된 까닭을 밝힌 적은 없는 듯하지만, 어쨌거나 잘못된 정보가 꽤 섞여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실보다 득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쨌든 “오류가 있으니 이덕하의 글은 읽지 말라”는 식의 말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제 글에 오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의 진화 심리학 번역서가 대부분 엉터리 번역이고, 한국 학자가 한국어로 진화 심리학을 자세히 소개한 글이 지금까지 사실상 없다는 점을 생각할 때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는 계속 진화 심리학을 배우고 있으며 제 글의 질이 높아지고 오류도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을 혼자 공부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엉터리입니다. 게다가 전문가가 그것이 엉터리라는 것을 지적해 줘도 똥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적어도 그런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Bayesian 님은 이에 대해서는 매우 단호한 반대 입장을 보인다:

꼭 진화심리학 뿐만이 아니라도, 세상의 여러 분야에는 학계로부터의 어떠한 검증도 받지 못했지만 이해하기 쉽게 쓴 교양서가 해당 분야를 대중적으로 퍼뜨리는데 일조한 서적들이 한둘쯤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서적들은 어쩔 수 없이 꽤나 잘못된 정보다 많이 섞여있는 법이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이 각자 전문 분야의 그런 책들이 머릿속에 떠오를 것이다. 나는 초보자를 위한 C 21일 완성 같은 책들이 떠오른다.)

이런 책은 더 적절한 책이 시중에 등장하기 전까지 홀로 서점을 지키며 (잘못된 내용과 함께) 해당 분야를 대중에게 널리 소개하는데 큰 기여를 한다. 문제는 전문가들이 직접 집필한 더 적절한 책이 출판되거나, 번역이 완료되어도 그러한 초기 서적이 여전히 잘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디까지 떠먹여 줘야 하는가

어쨌거나 진화심리학을 위한 그러한 “적절한” 책은 이미 출판된 상태다. David Buss의 진화심리학이 작년에 번역된 바 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이해하기도 쉽고 대가가 쓴 책이니 잘못된 내용도 별로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어렵게 다가올 수도 있다. 이런 반응들을 예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 “그 두꺼운 책을 바쁜 현대인이 어떻게 읽느냐” (번역된 진화심리학은 총 736쪽 분량에 무게는 1300g이나 된다.)
  • “책만이 공부 방법이라고 하면 엘리트주의 아니냐”
  • “블로그가 더 이해하기 쉽다”

저 얘기들은 분명 틀린 말들은 아니지만 전문가들에게는 더이상 얘기하고 싶어지지 않게 만드는 반응인 것이다.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쉬운 책이 필요한 것도 맞는 말이고, 우리말로 되어 있어야 하는 것도 맞는 말인데, David Buss의 책을 이렇게 번역까지 해줬으니 이 정도면 충분히 된 거 아니냐고 느낄 수 있다. 대체 어디까지 떠먹여 줘야 한단 말인가?

저런 반응들이 너무나 바보 같이 여겨질 수 있지만 그렇게 느낀다면 당신은 얼마간 지적 엘리트주의에 동조하고 있다고 자평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가 충분한 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저런 기준이 높을 수록 엘리트주의라고 한다. (고백하자면 나도 엘리트주의적으로 생각할 때가 많았던 것 같다.)

기준이 낮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David Buss의 책도 어렵다. 이덕하와 같은 사람들이 더 쉽고 원문부터 한국어인 진화심리학 입문서를 써준다면 그 사람들 중 일부는 만족스러워 할 것이다.

비판은 자원을 소모한다

그렇다면 전문적인 과학자 집단은 엘리트주의적이라고 결론 내려도 좋은 것인가? 심지어 Bayesian 님은 자신의 분을 굳이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Bayesian 님이 이덕하의 태도를 부당하게 여기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리고 (학위를 가지고 있는) 다른 과학자들은 왜 대체로 그 부당함에 동감하게 되는 것일까? 나는 그 부당함이 학위 미소지자인 진화심리학 애호가가 학위를 소지한 과학자인 자신에게 대들었기 때문에 괘씸함을 느낀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Bayesian 님 스스로도 그런 이유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이덕하의 글이 비과학적이라는 주장을 했지만, 이전 글에서 다루었다시피 우리는 이덕하가 서툰 과학일 수는 있어도 과학이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부당하단 말인가?

Bayesian 님을 열받게 한 이덕하의 Bayesian님, 지식과 용기가 있다면 제 글의 내용을 비판하십시오을 인용해보자:

Bayesian 님, “게다가 올리는 글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추측에 대해 횡설수설”이라고 하셨는데 지식과 용기가 있다면 한 편이라도 내용을 비판해 보시지요. 제가 세 번 정도는 응답을 해 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글을 곱씹어보며 느낄 수 있는 것은, 저 글은 결국 ‘내용’을 비판해달라는 ‘요청’이라는 점이다. 이덕하는 내용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글에서도 비슷한 부탁을 한다:

저는 전중환 교수가 그냥 저를 피하라고 권하는 대신 저의 글에 섞여 있는 오류를 조금이라고 지적해주었으면 합니다. 그래야 제가 수긍을 하고 고치든 반박을 하든 할 것 아닙니까? 진화 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에게 초 치는 이야기를 하려면 약간이라도 비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번역, 번역 비판, 글이 몽땅 쓰레기라서 아예 언급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저도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바른 정보가 뒤섞여”라고 쓴 것으로 보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관심은 일종의 제한된 자원이라는 것이다. 비판해줄 수 있을 만한 사람의 관심은 무한정한 것이 아니다. 다들 바쁜 사람들이고 한가하게 세상 블로그의 모든 글에 대해 비판을 해줄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 내용이 과연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인지 평가를 해야 한다. Bayesian 님이 보기에 이덕하의 글들은 관심을 가지고 공들여 비판 글까지 쓸만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워낙 이덕하의 블로그가 검색 엔진에도 잘 걸리고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니까 내용을 보기엔 시간이 아깝고 트윗 등으로 한두마디 한 것이다. Bayesian 님은 Alan Kang 님의 글에 대한 답변에서 실제로 그렇게 말했다:

그런 쓰잘데기 없는 짓을 하고 다니는 것은 제가 잉여이기 때문이고, 하필 이덕하 씨가 눈에 띄어서 그런 것이겠죠.

다소 관련 없는 주제의 글로 여겨질 수도 있으나 sonnet 님의 아마추어 암호 설계자에 대한 메모라는 글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나는 위 글의 암호학자를 다른 분야의 과학자 혹은 공학자로 확대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고 본다. 이 글이 의미하는 점 한 가지는 어떤 최소화된 “정의”를 따른다고 해서 그가 학계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기성의 집단 앞에서 자신이 그 집단의 일원이 될 만한 적절한 tradecraft를 익혔고 또한 이 집단이 추구하는 방향에 힘을 보탤 수 있는 유능한 동료임을 스스로 입증해 보여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앞선 글에서 이덕하가 과학계의 최소화된 “정의”(이덕하의 글은 과학적인가) 따르고는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만약 Bayesian 님이 심리학계의 일원으로서 이덕하의 글들을 내용 측면에서 비판해주는 “수고”를 해준다고 해도, 이덕하 자신은 “대중이 아니라” Bayesian 님을 포함한 다른 심리학계에 어떤 수고를 해줄 것인가? 내용에 대한 비판과 같은 관심은 결국 한정된 자원이므로 과학계는 학술지 논문 심사(peer review)와 같은 방식으로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그러한 자원에 탐이 난다면 과학계에서 동료로 인정을 받을 필요가 있다. 학위란 결국 과학계에서 그런 인정의 절차로 볼 수도 있다.

Bayesian 님 같이 그러한 절차를 정식으로 밟은 과학자들이 보기에는 이덕하와 같이 어떠한 절차나 노력도 없이 내용에 대한 비판을 요구하는 행동에 부당함을 느끼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그런 비싼 자원을 가져갈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자격을 얻는 데에 얼만큼의 절차와 노력이 적당한 것인가? 이미 학위를 소지한 과학자들이 보기에는 학위를 얻기 위한 그와 같은 절차나 노력은 과학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충분히 감수할만한 것일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것조차도 여전히 너무나 많은 노력을 요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또다시 어디까지 떠먹여 줘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떠오른다. 지금의 과학은 엘리트주의인가?

어떤 기준을 “충분한” 것으로 정하더라도 결국 누군가는 충분치 않다고 그럴 것이고, 이미 충분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며, 그런 사람들을 엘리트주의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학위 소지를 하지 않은 대중의 과학 애호가로서 지금의 과학에는 엘리트주의적인 일면이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것이 어쨌단 말인가? 어떤 프로그래머들은 내 블로그에 올라온 평소 글들을 보고서 엘리트주의라고 생각할 것이다.

문득 어째서 과학이 대중화되는 데에 수많은 좌절을 겪고 있는 이유가 과학계의 이러한 태도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1 month ago